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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플러그가이드

특별한 홈스쿨링 & 가족 대화법

2010/08/21 11:54

나는 이렇게 했다! 꿈을 이뤄가는 청년들_01

화가인 아버지와 서예가이자 연극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전민재 군. 그에게 음(音)은 다채로운 색(色)이었다. 그는 스스로 익히고 스스로 찾아낸 색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시켰다. 오늘도 그는 자신만의 색을 발견하기 위해 부암동을 걷고, 악보 위에 그림을 그린다.

지난 5월, 세계의 이목은 벨기에 브뤼셀에 집중됐다. 유럽뿐 아니라 일본, 중국까지 각 나라 취재진이 이곳으로 몰렸다. 세계 3대 콩쿠르인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이 콩쿠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전민재(25) 군이다. 그는 브뤼셀 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국빈대우를 받았다. 기사 딸린 차가 보내졌고 숙소 제공은 물론, 여왕의 만찬에도 초대됐다. 모두들 그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 관심은 그의 작품뿐 아니라 그의 나라와 부모에게까지 미쳤다. 그는 이 콩쿠르 작곡 부문 사상 최연소에, 한 번도 콩쿠르에 나서본 적도, 곡이 알려진 적도 없는 완벽한 뉴 페이스 작곡가였다.


콩쿠르 우승 통해 작품에 대한 확신 갖게 돼

홍은동 자택에서 만난 전민재 군은 마른 몸에 앳된 얼굴로, 나이보다도 한참 어려 보였다. 때문에 어떻게 그 복잡한 곡을 쓰고, 또 최고의 영예에 이를 수 있었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기대는 전혀 안 했어요. 콩쿠르에서 기악 부문은 26세 이하의 연주자들이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작곡은 30대 중반 이후의 음악가들이 두각을 나타내거든요. 마침 여름방학 때 쓴 이 콩쿠르가 제시한 여러 조건과 맞았고, 또 아버지께서도 ‘이왕 쓴 작품인데 보내봐라’고 하셨죠.”

콩쿠르는 5월이지만, 우승 발표는 지난해 12월에 났다. 우승작은 기악 콩쿠르가 있기 10일 전에 발표되고, 그 곡으로 기악 부문 참가자들이 경연을 벌이게 된다. 우승 소식은 우승자에게 미리 알리지만, 콩쿠르 날까지 자신의 곡이 우승이라는 사실은 비밀로 부쳐야 했다. 때문에 이 기쁜 소식을 약 6개월 동안 그와 가족만 알고 있어야 했다. 나중에는 자신의 수상 사실을 잊고 살기도 했단다. 이런 시간을 거치며 막상 수상 때는 담담했을까? 아니었다. 지난 5월 브뤼셀에서 보낸 한 달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다.

“제 곡이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거든요. 그러니 그동안 오케스트라 곡을 써도 확인할 길이 없었죠. 제가 그동안 다뤄온 재료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귀한 기회였던 것 같아요. 작품을 쓰는 데 확신이 들게 됐죠. 정말 영광이었어요.”

머릿속에서만 연주되던 곡은 실력 있는 우승 후보들과 오케스트라를 통해 재현됐다. “자아비판이 심하다”고 밝힌 그는 자신의 곡이 어떤 식으로 구현될 것인지, 또 그걸 듣는 자신의 기분이 어떨지 불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대만족. “워낙 뛰어난 연주자들이라 잘 살려줬다”고 자신의 곡을 들은 기분을 설명했다.

아들 곁에서 수상과 공연을 지켜본 아버지 전준엽 씨는 아들의 성공을 반기면서, 한편으로 한국의 무관심에 안타까움을 참을 수 없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취재진도 정말 많이 오고, TV에 생중계를 하기도 해요. 한국은 문화관광부에서조차 관심이 없고, 어떤 행사인지도 모르더군요. 한국은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많아요. 월드컵에 쏟는 관심 중 조금만 떼어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세계 최고의 예술의 나라가 될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요.”


가족 간의 대화가 상상력을 자극해

전민재 군은 화가인 아버지와 서예가이자 연극배우인 송설분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민재 군이 예술가로 성장하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공신이다. 어릴 적부터 재능을 보인 아들이 세계 대회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은 이후, 아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한층 안정됐다. 그래서였을까. 그들은 종종 “이제 와서 말할 수 있지만”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많이 달랐어요. 역사, 특히 고대사에 관심이 많았죠. 글도 쓰고 지도도 그려넣어 직접 역사책을 만들기도 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소설도 쓰고 그림도 그렸어요. 옥편에 있는 한자도 그대로 보고 그리고, 장식이 많아 복잡한 일본 우키요에(에도시대에 유행한 풍속화)도 보고 그리더군요. 처음 작곡을 할 때도 악보를 그린다고 생각했을 뿐이었죠.”

나는 이렇게 했다! 꿈을 이뤄가는 청년들_01

전민재 군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 아빠를 위한 왈츠’를 작곡했다. 그때서야 전준엽 씨는 “그냥 음표를 그리고 있던 게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들이 작곡한 곡이 꽤 많았어요. 동네 피아노학원에 다니면서 자기가 쓴 곡을 쳐보기도 했고요. 친구의 추천으로 교회음악으로 유명한 최병준 교수에게 습작을 보여드렸죠. 그분은 아들의 악보를 보고 나서 ‘모차르트도 이런 식으로 시작했다’며 작곡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키길 권하더군요. 아들이 작곡에 재능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민재 군은 본격적으로 작곡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음표를 그리고, 악보를 어떻게 사용하며, 자신의 상상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등을 배웠다. 그러나 그는 “배우는 것과 곡을 쓰는 것은 별개였다”고 말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음악에 심취했다. 이러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건 아버지 덕분이었다. 그는 음악사전 전집을 보면서 관심이 있는 음반이 있으면 아버지께 부탁했고, 그러면 아버지는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희귀 음반일지라도 주문해 사다줬다. 그는 주로 고음악들을 좋아했고, 국악에도 관심이 많았다. 여러 종류의 자극이 그를 발전시켰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배움은 식탁에서 이뤄졌다.

“우리 가족은 차 마시는 걸 좋아해요. 식사 후 테이블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면서 일주일에 서너 번씩 이야기를 하곤 해요. 주로 미술이나 시, 음악 같은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런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가족 간의 대화가 쉽지 않은 이유는 ‘공감’에 있다. 서로의 상황을 전혀 모른다면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전준엽 씨는 “가족과 대화하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요즘 아이들의 유행이나 화제에 대해 알아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다행히 이들 가족은 관심 분야가 같았다. 민재 군에게 부모는 예술가 선배이자 스승이었다.

“저는 오히려 중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할 말이 없어져요. 우리 가족이 대화가 가능한 건 가족 모두 같은 분야를 좋아하고 관심이 있기 때문이죠. 대화는 공감이 되어야 하거든요. 또 듣기와 대화는 교양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교양이 있으면 대화하는 예절도 갖추게 되거든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부부는 각각 다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듣는 데 유능한 사람이에요. 생각하는 게 다르더라도 유심히 들어요. 이해를 하든 안 하든 응수하고요. 저는 주로 이것저것 이야기해주는 편이죠.”


하루 종일 곡을 쓰기 위해 선택한 ‘홈스쿨링’

음악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은 대개 예중·예고를 거쳐 음대에 진학한다. 그러나 전민재군은 과감히 고등학교 과정을 포기하고 홈스쿨링을 선택했다. 여기에도 부모님의 도움이 컸다.

“물론 저희도 제도권 교육에서 이탈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걸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아들의 열정 덕분이었죠. 민재는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음악 듣고 곡 쓰는 일 이외는 거의 안 했어요.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죠. 제가 미술대학을 나와 지금 전업 작가로 살면서 느끼는 부분이지만, 앞으로는 재능만 있으면 분명 인정받는 분위기가 될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 송설분 씨 역시 홈스쿨링을 환영했다. 아들이 원하는 길을 가고, 원하는 공부를 스스로 택하면서 한층 밝아졌다고 한다.

“민재가 철이 들고, 자기 음악 세계에 몰입하면서 답답해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정말 많이 편안해지더군요. 혼자서 좋아하는 책을 보고 음악을 듣고 곡을 쓰면서 행복해졌죠. 예전에는 굉장히 예민하고 다혈질이었거든요.”

홈스쿨링 기간 3년간 그는 특별한 커리큘럼 없이 음악을 듣고, 끊임없이 곡만 썼다. 미완성이 될지라도 하루에 한 곡씩은 썼다. 이렇게 쓰다 보니 1년에 완성한 작품만 40곡이 넘었다.

“작곡은 창작이잖아요. 오히려 제도권 교육을 받은 학생들을 보면 더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와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란 선배들을 보면 상상력이 더 좋죠. 지금은 그런 선후배 친구들끼리 만나서 작곡 동인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어요.”

작곡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그는 좋은 모델일 것이다. 많은 후배들이 그를 보고 홈스쿨링에 관심을 갖고, 실제로 그에게 직접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고. 그러나 그는 대부분 말리는 편이다.

“될 수 있으면 자퇴하지 말라고 해요. 함부로 학교를 그만두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에요. 한번은 중학교 3학년 아이가 찾아왔어요. 재능이 있는 친구였고, 조금만 더 잘한다면 잘될 것 같았죠. 그래도 자퇴하지 말라고 했어요. 분명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있거든요. 결국 학교를 계속 다녔는데 지금 대학교 후배로 들어와서 자신의 길을 잘 가고 있어요.”

홈스쿨링을 하는 동안에도 가족 간의 대화는 계속됐다. 가족과 둘러앉은 식탁은 그에게 학교나 마찬가지였다. 대화 속에서 그는 음악뿐 아니라 미술, 영화, 시, 연극에서 일반 시사 이야기까지 많은 것을 배웠다.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는 그는 졸업한 뒤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파리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그곳은 어떤 자극과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자신만의 색깔을 찾기 위한 그의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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