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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도사가 되는 성지식

2010/09/01 14:00

전희에서 능력이 결정된다


오르가슴에 얽힌 오해 중에 대표적인 것은 뭐니뭐니 해도 “함께 클라이막스에 달하는”것에 대해 지나치게 구애되고 있는 것일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오르가슴의 정점에 달함으로써 강한 유대와 깊은 도취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그것 자체는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그것에 지나치게 구애되면 오히려 역효과도 되는 수가 있다.

제대로 타이밍이 맞았을 때는 좋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는 실망감이 뒤에까지 꼬리를 끌기 때문이다. 이런 실망감이나 실패감은 남성의 자신과 릴랙스한 기분을 손상하여 모처럼의 섹스를 답답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만약 함께 클라이막스에 달하는 것에 구애되면 릴랙스하고 섹스에 임하면 즐거워할 섹스가 쓸데없는 목표 때문에 역효과를 가져와 좌절이나 실패감으로 심인성 임포텐츠로 몰고가는 경우도 있다.

오르가슴은 매우 개인적인 체험이다. 몸도 마음도 녹아 버리는 것같은 오르가슴의 쾌락도 그것을 서로 공유한다는 것은 사실은 매우 드문 일인 것이다.

더구나 남자의 오르가슴, 다시 말해서 사정과 여성의 다중형 오르가슴은 완전히 이상적인 것이기 때문 “함께 클라이막스에 달한다”는 것 따위는 아예 생각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설사 함께 오르가슴에 달했다 하더라도 여성쪽이 한번 더 오르가슴의 물결이 밀려 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는 남자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타이밍을 맞추는 것에 구애되지 않고 상대의 오르가슴을 가능한 한 존중한다는 정도로 그쳐 두는 것이 남녀의 골을 깊게 하지 않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확실히 여성은 남성과의 합체감을 갖는 동시에 남성과 오르가슴을 공유하는 것이 보다 깊은 만족감을 얻을 수가 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영화나 소설의 영향탓인지 여성이 몇 번이나 달할 때까지 사정을 참고 멈추지 않으면 남성으로서의 능력이 없다고 단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자도 자기의 애무에 의해서 여성을 몇 번이고 오르가슴으로 이끈다든가 그때의 절정감의 소리를 듣는 것이 남자로서의 숙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성이 참지 못해서 여성이 오르가슴에 달하기 전에 빨리 사정했다 하더라도 그전의 단계에서 충분한 전희 등으로 커버할 수 있어야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삽입하기 전에 전희만으로 오르가슴으로 이끌수가 있다면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이 “함께 클라이막스에 달하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한 것이다.

남자는 여성이 오르가슴에 달해서 절정감에 젖어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정신적인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함께 클라이막스에 달하는 것”에 구애되지 말고 오히려 여성을 즐겁게 해 주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 훨씬 남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너무 빨리 사정을 해 버리면 섹스가 비참한 결과로 끝나는 수가 많다. 남자의 오르가슴은 급속하게 끝나 버리기 때문에 “어떻게 된 거예요? 벌써 끝나버렸나요?” 하고 여자로부터 힐책을 당하고 머리만 긁고 있어서는 체면이 말이 아니다.

여성이 먼저 클라이막스에 달할 때는 서로 아무런 곤란한 일도 없지만 그것이 좀처럼 잘되지 않는 케이스가 많다. 이런 남자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일부 여성들은 거짓 오르가슴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녀의 오르가슴에 최대한 신경을 써라


“저의 그이와의 섹스에서 오르가슴에 달한 일이 아직도 한 번도 없습니다. 이대로 성관계를 되풀이 하면 뭔가 몸에 해롭지는 않을까?”일부 잡지의 상담 코너 등에 이런 질문을 보내 상담을 구하는 것을 가끔 본다. 충족되지 않는 욕구가 축적되면 몸에 나쁜 영향이 미쳐 멀지 않아 어떤 병에 걸리지 않을까, 아마도 그것은 상담한 여성의 절실한 실감이 있음에 틀림없다.

성에 관한 정보의 범람으로 “나는 감도가 둔한 것일까” “남편의 테크닉이 미숙한 것일까” 하고 섹스 기사를 읽는 때마다 가슴을 졸이고 있다가는 정말로 병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섹스의 불만이 권태감이나 두통 등의 육체적인 부조를 가져오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병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고통은 본인에게 있어서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병과 비슷한 이런 증상은 거의 전부가 심인성이다. 따라서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런 정도이겠지”하고 달관해 버리면 그 증상은 금새 경감되어 버린다.

다시 말해서 욕구불만이 가져오는 병은 육체적인 원인보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콤플렉스라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 의해서 생기는 패배감이다. 자기에게 결정적인 잘못이 있다기 보다는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뛰어나 있다고 생각하고 맥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마는 케이스가 많은 것이다.

일부 책자에서 게재되는 섹스 기사는 선동적인 표현을 쓰고 흥미본위로 이끌어 간다. 그러므로 가볍게 읽고 성적인 자극을 받아들이는데 그치는 것이 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불만족감을 내팽개쳐 두는 것은 남자의 태만이라고 할 수 있다. 병이 되는 일은 없더라도 오르가슴이 없는 섹스가 여성에게 주는 실망감은 남자의 상상을 훨씬 넘어서 깊다.

원래 여성의 오르가슴은 남자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얻지 못한 실망도 역시 큰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르가슴이 없는 섹스는 몸에 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해를 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특히 자위 등으로 그 맛을 알고 있는 경우는 심각하다. “나만이 섹스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여성들의 불만이 마음에 투영되어 그것이 곧 몸의 상태에까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것이다.




시간을 들인 다정한 애무가필요


그렇다면 남성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2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삽입을 섹스의 유일한 목적으로 생각하지 말 것, 삽입하고 피스톤운동을 하는 것은 남자가 오르가슴을 얻는 데는 필요한 일이겠지만 여성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중요한 의미가 없다. 오히려 시간을 들여서 하는 다정한 애무가 여성의 오르가슴을 끌어내기 쉽다.

아직 몸이 허락치 않은 단계에서 삽입되어 남자 혼자만 클라이막스에 달해 버린다면 여성쪽에 불만이 남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성의 경우는 오르가슴에 달하지 않더라도 임신하고 출산한다. 그렇게 되면 성의 불만은 금새 어디론가 가 버린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손이 닿지 않게 되면 얻지 못했던 오르가슴에 대한 미련이 고개를 쳐들고 곧 그것이 불륜의 사랑의 에너지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여성의 오르가슴을 경시하다간 뜻밖의 보복을 당하는 법이다.

또 하나는 섹스에 대한 여성의 억제심을 제거하는 노력이다. 여성은 오르가슴이 다가오면 소리를 자꾸 지르는데 이것은 여성이 억제로부터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고 싶어하는 증거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개인차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소리를 억제하고 있을 때는 자기자신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좀처럼 오르가슴에 달하기 어렵다.

그것을 다정한 리드로 제거해 주는 것도 남성의 역량의 일부일 것이다. 암원숭이가 한창 섹스를 하고 있을 때 입을 둥글게 하고 ‘호오’하는 소리를 내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사람에 비해 극단적으로 표현능력이 부족한 원숭이 조차도 소리를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에 사람이 그 쾌감을 소리로 표현하고 그 소리로 자기를 해방시키는 것은 극히 당연한 자연현상일 것이다.

멋진 섹스체험해야 감도 깊어져


“잘 가꾸어진 여자”라는 말이 있다. 그저 단순한 미인이라든가 스타일이 좋다는 표면적인 의미가 아니라 소위 섹스 어필한 여자를 가르키는 말이다. 이렇게 남자의 마음을 끄는 여성으로부터 남자는 무의식 중에 섹스에 능숙한 여자라고 요염한 이미지를 상기해 버리는 법이다.

그렇지만 섹스에 능숙한 여자란 어떤 여자냐고 물으면 대답이 막힌다. 물론 정설따위는 없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해두고 싶은 것은 소위 남성경험이 많은 여성이 곧 잘 가꾸어진 여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잘 가꾸어진 여자는 남자의 성기 및 테크닉에 의해서 명기로 변신한 여성으로 착각하면 이런 오해를 낳는다. 여자의 성기는 남자에 따라서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하는 것은 반응하는 방법이다. 수많은 남자와 잤다고 해서 섹스의 반응이 풍부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반대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사랑이 없는 섹스에 열중한다든가 자극만을 구하는 섹스에 빠져 있으면 섹스는 자꾸 빈약해지고 만다. “잘 가꾸어진 여자”가 풍기는 섹스어필은 돈을 받고 파는 섹스나 난잡한 섹스가 아니라 감성이 풍족하고 윤택한 성의 향기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에게 있어서 섹스에 능숙한 여자란 여자 성기 모양이 좋은 여자가 아니라 섹스 반응이 좋은 여자를 말하는 것이다. “낮에는 숙녀같고 밤에는 창녀같다”는 말이 있지만 이것은 남자에게 있어서 영원한 여성상일 것이다.

침대 위에서는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성의 쾌락에 도취한다. 남자에게 있어서 그런 여성이 매력적인 것은 여성의 광태가 남자의 해방적인 기쁨을 불어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소극적이고 판에 박힌 섹스는 큰 기쁨을 가져오지 못하며 더구나 여성을 잘 가꾸는데 자극이 부족하다.

여성은 근사한 성체험을 맛볼 때마다 여성의 감도는 서서히 깊어져 가는 법이다. 여자가 세련된다느니 연마된다느니 하는 것은 이러한 성체험을 쌓아 나가는 것을 말한다. 여성에게 있어서 충실한 섹스를 통해서 얻은 오르가슴의 체험은 그것 자체가 인생의 기쁨에 비유해도 좋을 만큼 크다.

따라서 성의 기쁨을 만끽하고 그 방법을 알고 있는 여성은 어딘지 모르게 성의 향기를 풍기게 되는 법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성기 자체가 민감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여성의 정신적 문제인 것이다.

자기에게 있어서의 새로운 체험이 마음의 영역을 넓히고 그것이 성기의 감음성을 저절로 불러일으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성감의 개발을 성기의 차원에서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여성의 미묘함이다.




변화를 시도하라


“불륜의 사랑에서 비로소 오르가슴을 알았다. 남편으로부터는 한 번도 얻지 못했던 체험이었다”는 말은 특별히 신기한 일도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상대가 바뀌면 섹스 자체가 불타오르기 때문이다.

남자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어쩌면 남자야말로 이런 경향이 현저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누라와는 10일에 한번의 페이스라도 마음이 무거운데 젊은 여성하고 라면 매일 밤이라도 좋다는 것이 세상의 남편족들의 숨김없는 심경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바꾸면 즐거움이 특별히 사람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원숭이도 오랫동안 같은 짝으로 우리속에 넣어 두면 곧 아무 짓도 하지 않게 된다. 그렇지만 암컷이 바뀌면 수컷은 자꾸만 교미를 하고 싶어한다는 실험 데이터도 있다.

상대에게 신선한 느낌을 가지면 성적 욕구가 촉발되는 것은 영장류의 성충동에 있어서의 하나의 큰 특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성의 경우 불륜의 상대에게 강렬한 오르가슴을 느낀 것은 그 상대가 남편보다 기교적으로 뛰어나 있다기 보다는 거기에 매너리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열중한 만큼 억제심이 사라지고 오르가슴이 커진 것은 섹스가 원래 비일상적 행위인데다가“사랑”이라는 대뇌의 작용하고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여성의 오르가슴은 “마음”에 의해서 완성된다는 하나의 증명이 될 것이다.

“남의 눈을 피해서 거듭하는 밀해”라는 다급한 심경이 탐욕스러운 섹스를 연출하여 큰 오르가슴을 이끌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륜의 상대가 성적 기교가 뛰어났기 때문에 큰 오르가슴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말해 두고 싶은 것은 섹스의 매너리즘 그 자체가 오르가슴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매너리즘에서 오는 상대에 대한 배려의 결여라는 것이다.

상대가 바뀌면 그것으로 완전히 흥분해 버리는 정복형인 남자의 성욕과 달라서 여성의 오르가슴은 상대만 바뀌면 그것으로 좋다는 식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성은 강간에 의해서도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어야 옳지만 실제로는 그런 사례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여성은 강간을 바라는 잠재의식이 있다고들 흔히 말하지만 그것은 난폭할 정도로 열심히 사랑받고 싶다는 기분을 말하는 것이지 실제로 강간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밝혀둔다.

또 여성의 오르가슴은 커뮤니케이션 위에 쌓아 올려지는 성질의 것이라는 것도 다시금 알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어쨌든간에 잘 가꾸어진 좋은 여자는 남자가 정성을 들여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것은 성기의 차원을 넘는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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